연대지능이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대부분 구독료를 내고 남의 AI를 빌려 씁니다. 매달 요금을 내면서도 그 AI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데이터로 자랐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연대지능은 이 관계를 바꾸는 일입니다. 빌려 쓰는 자리에서 벗어나, 우리 손으로 우리에게 맞는 AI를 길러내는 길입니다.
이 페이지는 그 생각의 뼈대를 30분 안에 훑어보는 자리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씩 짚어가며 읽어보시면 됩니다.
세 가지 지능 — 이 AI는 누구의 것인가
같은 AI 기술이라도 누가 소유하고 무엇을 위해 쓰는가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크게 셋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우물물이라도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쓰임이 달라집니다. 물장수가 관리하면 값을 매겨 파는 상품이 됩니다. 구청이 관리하면 행정 서비스가 됩니다. 마을 두레가 관리하면 서로 돕는 자원이 됩니다. AI도 똑같습니다.
D1. 시장지능·공공지능·연대지능 — 주인·돈줄·목적 비교
연대지능은 시장지능도 공공지능도 아닌 제3의 자리입니다. 이윤을 위한 것도, 행정을 위한 것도 아니라 서로 돕기 위한 AI입니다.
폴라니의 통찰 — 원래 상품이 아니었던 것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한 경제학자의 통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칼 폴라니는 1944년 「거대한 전환」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누가 팔려고 만든 게 아닌데, 시장이 값을 매겨 사고파는 것이 있습니다. 폴라니는 이것을 허구상품(fictitious commodity)이라 불렀습니다.
공기에 값을 매겨 사고팔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숨 쉬는 일 자체가 돈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말이 안 되는 상상 같지만,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실제로 이런 일을 세 영역에서 벌여 왔다고 봤습니다. 바로 토지(자연)·노동(사람)·화폐(구매력)입니다.
땅은 원래 사고팔 물건이 아니라 모두가 발 딛고 사는 자연입니다. 사람의 활동은 삶 그 자체이지 상품이 아닙니다. 화폐는 사회가 서로 믿고 주고받기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이 셋에 값을 매기면서 부동산 투기, 노동력 착취, 금융위기가 뒤따랐습니다.
D2. 허구상품 개념도 — 실재 → 시장의 상품화 → 사회 위협
허구상품이란 원래 팔 물건이 아니었는데 시장이 억지로 상품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토지·노동·화폐가 그 대표적인 셋입니다.
5대 허구상품 — 셋에서 다섯으로
폴라니는 토지·노동·화폐, 이 셋을 허구상품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두 가지가 더 드러났습니다. 에너지와 데이터입니다. 폴라니가 짚은 셋에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둘을 더한 것입니다.
우리 운동이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 다섯 가지를 시장의 손에서 사회의 손으로 되찾는 일입니다.
D3. 1944년 폴라니의 셋(토지·노동·화폐) → 21세기 +에너지 +데이터로 확장
| # | 허구상품 | 실재(원래 무엇) | 시장이 한 일 | 되찾기 운동 |
|---|---|---|---|---|
| 1 | 토지 | 자연·땅 | 부동산 상품화 | 로컬푸드·먹거리 운동 |
| 2 | 노동 | 사람의 활동 | 노동력 상품화 | 협동조합·사회연대경제 |
| 3 | 화폐 | 사회적 신뢰·구매력 | 금융 상품화 | 지역화폐·신협·로컬페이 |
| 4 | 에너지 | 햇빛·바람·물, 석유·석탄 | 화석연료·전력 상품화 | 시민재생에너지·에너지민주주의 |
| 5 | 데이터 | 인류의 지식·말·관계 | AI 학습데이터 상품화 | 연대지능(품아이 등) |
폴라니의 셋 — 이미 걸어온 길
앞서 본 토지·노동·화폐, 이 세 허구상품에는 이미 오랜 되찾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20세기 협동조합·생협·신협 운동이 바로 여기에 맞서 온 길입니다. 우리 운동도 이 흐름 위에 서 있습니다.
에너지 — 자연의 힘을 되찾는 일
햇빛·바람·물은 누구의 것일 수 없습니다. 석유와 석탄도 수억 년 자연이 만든 것이지, 누군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장은 이 자연의 힘에 값을 매겼습니다. 그 결과가 기후위기이고 에너지 대기업의 지배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이 스스로 태양광·풍력 발전소의 주인이 되는 시민재생에너지 운동입니다. 햇빛소득마을, 해바람물 협동조합 같은 현장이 그 예입니다. 이 운동을 돕는 AI 도구가 품에(chat.solarshare.kr)입니다.
데이터 — 지식의 공유지를 되찾는 일
인터넷의 글·그림·코드·대화는 인류가 수천 년 쌓아 온 지식의 공유지입니다. 위키백과, 우리가 쓴 글, 개발자들이 무료로 나눈 코드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빅테크는 이것을 긁어모아 AI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AI를 구독료를 내고 빌려 씁니다. 내가 내준 것으로 만든 것을 내가 다시 사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를 되찾는 운동이 바로 연대지능입니다. 다음 섹션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에너지와 데이터는 21세기가 새로 드러낸 두 허구상품입니다. 둘 다 지금 우리가 되찾고 있는 중입니다. 에너지는 품에로, 데이터는 품아이로 되찾습니다.
지능 무산자 — 내 데이터가 남의 자산이 되는 과정
데이터가 상품이 되는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면, 왜 우리가 연대지능을 길러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단계. 공유지 흡수
인터넷에 공개된 글, SNS, 책, 코드가 AI를 학습시키는 데이터로 빨려 들어갑니다. 우리가 무료로 나눈 지식, 우리가 남긴 흔적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2단계. 가치 추출
인류가 수천 년 쌓아 온 지적 활동이 AI 모델이라는 결과물로 응축됩니다. 이 응축물이 곧 기업의 자산이 됩니다. 오늘날 AI 대기업들의 가치가 수백조 원 규모로 평가되는 배경입니다.
3단계. 임차 강제
그 결과물을 쓰려면 다시 구독료를 냅니다. 내 데이터로 만들어진 것을, 내가 돈을 내고 다시 사는 구조입니다.
D4. 공유지 흡수 → 가치 추출 → 임차 강제, 순환 구조
이 상황을 정확히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지능 무산자입니다. 무산자란 원래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갖지 못한 사람"을 뜻합니다. 마르크스는 땅을 잃고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지금은 데이터라는 자원을 남에게 내주고, 그 데이터로 만든 결과물을 다시 돈 주고 사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동을 위한 말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부르기 위한 이름으로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비슷한 비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이 구조를 기술봉건주의라 불렀습니다. 빅테크는 디지털 영지를 가진 영주와 같고, 우리는 그 영지에서 일하며 임차료 격인 구독료와 데이터를 바치는 처지에 놓입니다.
D5. 기술봉건주의 — 영주(빅테크)·임차인(우리)·공물(구독료·데이터)
데이터를 무료로 내주고 그 결과물을 다시 돈 주고 사는 구조, 이것이 지능 무산자의 자리입니다. 정확히 이름 붙이는 일이 문제를 푸는 첫걸음입니다.
데이터·지능·지혜 — 세 층으로 보기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세 층으로 나누어 보면 우리가 할 일이 더 선명해집니다.
데이터는 재료입니다. 사람들의 글, 말, 행동의 흔적입니다.
지능은 그 재료로 만든 도구입니다. 데이터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AI 모델입니다.
지혜는 그 도구를 사람답게 쓰는 힘입니다. 데이터도 지능도 아닌, 그것을 어떻게 쓸지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D6. 데이터(재료) → 지능(도구) → 지혜(쓰는 힘)의 3층 구조
빅테크는 재료(데이터)와 도구(지능)를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지혜까지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쓸지 판단하는 힘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습니다.
데이터는 재료, 지능은 도구, 지혜는 그 도구를 사람답게 쓰는 힘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국 지혜입니다.
연대지능이란 — 빌려 쓰기에서 길러내기로
연대지능(Solidarity Intelligence, SI)은 임차인의 자리에서 벗어나 우리 손으로 AI를 기르는 길입니다.
D7. AI(시장지능) 대 SI(연대지능) — 데이터·모델·관계·이름 대조
이 길을 구체적으로 다섯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지능 공유지 회복 — 인류가 쌓은 지식은 특정 기업의 사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일입니다.
- 도메인 양육 — 우리 매장, 우리 조합, 우리 마을의 데이터로 우리에게 맞는 AI를 기르는 일입니다.
- 데이터 협동조합 — 데이터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 연합학습과 로컬 추론 — 데이터를 빅테크 서버로 보내지 않고 우리 안에서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 이주 가능성 — 하나의 빅테크에 갇히지 않는 열린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다섯 갈래를 폴라니의 틀로 다시 보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시장교환은 시장지능과, 재분배는 공공지능과, 그리고 호혜는 연대지능과 짝을 이룹니다.
D8. 시장교환·재분배·호혜 — 시장지능·공공지능·연대지능과 짝
연대지능은 데이터를 공동 소유하고, 모델을 우리 손으로 기르고, 구독이 아니라 호혜의 관계로 AI를 대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 — 도메인 AI
이 사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우리 매장의 데이터로 우리 매장의 AI를 만들고, 우리 조합의 지식으로 우리 조합의 AI를 만들고, 우리 마을의 이야기로 우리 마을의 AI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활동가 여러분이 직접 써볼 수 있는 예시가 이미 있습니다.
품아이
로컬푸드 매장과 조합원을 위한 AI입니다.
품에
시민재생에너지 운동을 돕는 AI입니다.
로이
전국로컬푸드협동조합네트워크를 위한 AI입니다.
빅테크가 만든 대형 모델은 전기나 도로처럼 공통 인프라로 빌려 씁니다. 다만 그 위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지능, 곧 무엇을 배우고 무엇에 답하는지는 우리 손에 둡니다.
큰 모델은 인프라로 빌리되, 그 위의 지능은 우리가 기릅니다.
한 장 정리 + 더 읽기
핵심 5문장 요약
AI는 누가 소유하고 무엇을 위해 쓰느냐에 따라 시장지능·공공지능·연대지능으로 나뉩니다.
폴라니는 토지·노동·화폐가 원래 상품이 아니었는데 시장이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짚었습니다.
21세기에는 에너지와 데이터가 새로운 허구상품으로 드러났고, 우리는 이 다섯을 되찾는 중입니다.
데이터를 무상으로 내주고 그 결과물을 다시 사는 구조를 정확히 이름 붙이면, 그 문제를 풀 방법이 보입니다.
연대지능은 빌려 쓰는 자리에서 벗어나 우리 손으로 AI를 기르는 길이며, 품아이·품에·로이가 그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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